Artistic World - Huh Jeong-Won

Criticisms

Artistic World

2025


〈뭉크의 태양 앞에서〉, 2018, 캔버스에 유채, 130 x 162.2 cm ©Artist

허정원의 작업은 이동(移動)이라는 일상의 조건에서 출발한다. 반복되는 이동 속에서 경험되는 사라짐과 나타남, 그리고 그 순간들의 감각과 정동은 작가의 몸에 축적되며, 그 축적된 몸은 곧 하나의 회화적 장으로 전환된다. 이때 몸은 단순한 재현의 매개가 아니라, 기억(記憶)과 의식(意識)이 중첩된 감각적 저장소이자 생성의 기반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축적의 과정은 회화에서 ‘추상(抽象)’과 ‘층위(Stratification)’라는 형식으로 드러난다. 허정원의 추상은 대상을 단순히 제거하거나 환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험된 세계를 지우고 남기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도달하는 존재의 핵심을 향한다. 이는 재현을 거부하는 태도라기보다, 재현 이전의 감각과 인식의 층위를 다시 호출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특히 그녀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레이어(layer)가 아니라 ‘층위(stratification)’로서의 구조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 그리고 이동의 경험에서 파생된 이미지들은 하나의 화면 안에서 지층처럼 축적되며, 이들은 완전히 드러나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로 공존한다. 이러한 구조는 존재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시간과 경험의 누적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드러남과 은폐의 관계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언제나 그 이면의 층위를 전제하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은 회화의 핵심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방식은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과정 속에서 성립한다는 존재론적 인식과 맞닿아 있다.

결국 허정원의 회화는 이동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감각과 기억을 바탕으로,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자기’를 탐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작업은 특정한 형상을 제시하기보다, 존재가 형성되고 해체되며 다시 구성되는 과정을 추상과 층위의 구조를 통해 드러낸다.